지난 18일(토) 알마티 한국교육원에서 『재소고려인의 노래를 찾아서 I ․ II』(화남출판사, 2007) 출판 기념회가 열렸다.
300 여 명의 동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행사는 1부 출판기념회와 2부 공연으로 나뉘어 1시간 30분 가량 진행되었다.
신형은 총영사, 카자흐스탄 작곡가동맹 등의 축하 인사가 이어지고, 지금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가족과 지내고 계시는 정상진 옹(92)의 영상편지가 상영됐다.
<정상진 옹(92)>
동포 지도자 정상진 옹(92)은 모스크바에서 보내온 영상편지를 통해 '구 소련 고려인들의 노래를 찾아서'의 출간을 축하하면서도 "고려인들이 모국어를 잃어버림에 따라 고려인 문화가 죽어가고 있다"며 모국어와 전통문화의 계승과 발전을 당부하기도 했다.
이어진 2부 공연에서는 고려인합창단 '고향'과 '비단길'이 합동으로 <망향가>와 <씨를 활활 뿌려라>를 불렀고, <장타령>을 알고 있는 유일한 고려인인 김하범(84)옹이 <장타령>을 구성지게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 또 동포가수 김 조야 씨와 김병학 시인, 동포 어린이들이 차례로 나와 소비에트시대의 고려인 가요와 멜로디는 잊혀지고 노랫말만 전해지고 있는 '그리운 옛날', '아이들아 놀자' 등을 불렀다.
한편, 알마티 시립 카자흐민속악단 ‘사즈겐’이 <고향의 봄>과 <아리랑>을 카자흐민속악기로 연주하면서 카자흐인이 직접 우리말로 노래를 불러 공연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책 소개
1권은 동포 작곡가인 한 야꼬브 선생님이 여러 고려인 집성촌을 찾아다니며 녹취한 고려인 가요가 채보되어 있고, 김병학 시인이 각 가요의 내용, 유래, 역사, 의미, 작곡가, 작사가 등을 고증 정리해 놓았다.
2권은 고려인 신문 ≪선봉≫과 ≪레닌기치≫,≪고려일보≫에서 찾아낸 가요들만 김병학 시인이 정리해 놓은 것이다. 또한 2권 말미에는 고려인 가요사와 가요내용, 고려말 문제 등이 해제되어 있고 고려인 작곡가, 작사가, 가수들의 연보도 실려 있다.
이 책은 한 야꼬브 선생님과 창작문화단체 <오그늬 람빠> 최 따찌야나 대표가 김병학 시인을 만나면서 작업이 시작됐다.
저자 김병학 시인 인터뷰
인생은 정말 아이러니다. 음악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으면서 내가 음악에 관한 책을 편찬했으니… 그것도 거의 1,000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두 권짜리 책을. 물론 음악이론이나 악보와 관련 없는 분야여서 가능한 일이기는 했지만… 나는 지난 2007년 고려인 작곡가 한 야꼬브씨와 함께 재소고려인들의 구전가요와 창작가요를 모아 책으로 펴낸 바 있다. 졸저 『재소고려인의 노래를 찾아서 I ․ II』(화남출판사, 2007)가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의 제 1권에는 한 야꼬브 작곡가가 여러 고려인 집성촌을 찾아다니며 녹취한 고려인 가요가 채보되어 있고 나는 그걸 바탕으로 내가 찾아낸 가요필사본들을 더 보충하여 각 가요의 내용, 유래, 역사, 의미, 작곡가, 작사자 등을 고증 정리해 놓았다. 제 2권은 고려인 신문 <선봉>과 <레닌기치>와 <고려일보>에서 찾아낸 가요들만 내가 따로 묶어 정리해놓은 것이다. 그리고 2권 말미에는 고려인 가요사와 가요내용, 고려말 문제 등이 해제되어 있고 고려인 작곡가, 작사자, 가수들의 연보도 실려 있다.
책을 완성하는데 꼬박 2년(햇수로 3년)이 걸렸다. 2005년 9월에 시작하여 2007년 7월에 끝냈으니 정확히 말하면 2년이 다 되지는 않는다. 2005년 9월 어느 날 한 야꼬브 작곡가와 창작문화단체 <오그늬 람빠> 최 따찌야나 대표가 한번 만나자고 해서 만난 것이 이 책을 만드는 작업에 뛰어든 계기가 되었다. 그들은 나에게 한해 전에 한 야꼬브씨가 여러 고려인 집성촌에서 녹음기로 녹취한 고려인가요의 가사를 정리해 달라는 솔깃한(?) 제의를 해왔다. 그동안 4명의 지원자가 나섰으나 모두 중도에 포기했다고 하면서.
나는 그들 앞에서 1주일 이내로 가사 정리를 끝내주겠다고 장담했다.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어서였다. 나는 한국인 최초로 고려인 최초 강제이주지 우스또베에 한글을 가르치러 들어갔고 거기서 우리말을 가르치면서 독특한 재소고려인 방언인 ‘고려말’을 익혔으며 이후 8년간이나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쳐온 데다 나중에는 재소고려인 민족지 고려일보사에 들어가 일하면서 한글과 고려말 속에 푹 파묻혀 살았기 때문이다. 내놓고 말은 안했지만 고려말 실력에 있어서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헌데 작업을 시작한 지 얼마 오래지 않아 그렇게 함부로 내뱉은 말에 대해서, 나의 그 경솔함에 대해서 뼈저리게 후회했다. 작업을 진행하던 초기에는 불확실성의 그림자가 멀리서 다가오고 있음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일을 하면 할수록 더 해야 할 일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그러다가 불현듯 내가 그 안에 깊숙이 갇혀버렸음을 깨달은 건 일을 시작한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건 밑도 끝도 없이 빠져드는 수렁이었다. 나의 얄팍한 고려말 실력은 오래 전에 바닥나버렸다. 장담에 대한 대가가 얼마나 혹독한 것인지를 절절이 깨달았다.
고려말 가사를 해독하는 작업은 외국어를 새로 익히는 일보다 훨씬 힘들었다. 발음이 왜곡되고 뜻이 변질되고, 의미는 사라져버린 채 발음만 남은 노래가사들을 판독하는 일은 마치 새로 발견된 고대문자나 암호를 해독하는 것과 같았다. 나는 낯선 발음의 역사와 뜻을 알아내기 위해 한 야꼬브 작곡가가 녹음기에 녹취해놓은 가요를 기본적으로 수십 번, 어떤 노래들은 수백 번씩 들었다. 그건 마치 아기가 걸음마를 떼듯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것과 같았고, 어두운 달빛에 처음 보는 물건을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면서 그 실체를 조금씩 알아내야 하는 것과 같았다. 정말로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을 하나하나 깨달아가는 기쁨은 그 무엇에도 비할 바가 아니었다. 실례를 하나 들자면, “왜생겸”이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다. 나는 이와 같이 생소한 노래제목을 접하고 여기에 관련성이 있을 만한 고려인 방언을 수없이 떠올려보았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그 의미를 알아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왜생겸”은 뜻을 알 수 없는 노래제목으로 남을 뻔 했다. 헌데 작업이 끝나갈 무렵 이 뜻은 조용히 실체를 드러냈다. 여러 관련 자료들을 구하고 추적한 끝에 찾아낸 이 말뜻은 다름 아닌 “왜 생겨났니?”라는 문장의 명사형 준말이었다.
이 책과 관련하여 반드시 언급해야 할 분이 있다. 재소고려인 원로이자 문학평론가인 정상진 선생님이다. 정상진 선생님이 안 계셨더라면 이 책은 세상에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나 스스로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설령 세상에 내놓았다 하더라도 수많은 부끄러움과 오류로 점철되어 있었을 것이다. 정상진 선생님이 재소고려인 가요집이 반드시 세상에 나와야 된다는 신념으로 나를 일깨우며 필요할 때마다 주옥같은 증언과 조언을 해주지 않으셨더라면 『재소고려인의 노래를 찾아서 I ․ II』라는 책은 별 의미 없는 책으로 남았을 것이다.
이 책을 엮는데 정상진 선생님이 나에게 해주신 증언과 고증과 감수는 그 중요성과 정확성과 내용의 풍부함과 현장감에 있어서 내가 수개월에 걸쳐 탐독한 70년 분량의 재소고려인신문에 거의 필적하는 수준이었다. 나는 재소고려인 가요의 출처와 근거, 잊혀진 작사자 ․ 작곡가 ․ 가수, 망실된 가요사 등을 밝히기 위해 1938년부터 2003년까지의 재소고려인신문 <레닌기치>와 <고려일보>를 모두 읽었다. 나는 이를 근거로 재소고려인의 가요사를 최초로 정리하고 각 가요의 출처 및 가요와 관련된 인물들의 연보도 실증적으로 해제할 수 있었다. 재소고려인 역사 전반에 이 기록물(고려인 신문 ‘레닌기’와 ‘고려일보’)보다 더 풍부하고 정확하고 가치 있는 자료는 세상에 없다. 이 신문을 탐독하는 과정에서 신문에 실린 고려인 가요들만 따로 찾아내 원래 예정에 없던 『재소고려인의 노래를 찾아서』2권을 별도로 만들어 낼 정도였으니…
그런데 정상진 선생님 한 분의 기억 속에서 펼쳐져 나오는 고려인가요에 대한 정보와 이에 대한 해설이 거의 그 정도에 육박했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도무지 이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허나 나중에 찾아낸 거의 모든 문헌자료와 기록물들이 정상진 선생님의 구두증언이 대부분 옳았다는 것을 의심의 여지없이 확인시켜주었다. 정상진 선생님을 만난 건 나에게 일생일대 최대의 행운이었다.
또한 안 윅또르 사진작가가 제공해준 사진들은 이 가요집에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자료들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또 이 작업은 10년이 넘도록 알마틔에서 동고동락해오면서 내가 이런 일에 매진할 수 있도록 무한한 배려를 베풀어준 후배 임병율 <대종> 대표이사와 진재정 이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두 후배가 없었더라면 이 작업은 애초에 시작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2007년 1월, 나는 그동안 모으고 정리한 자료들을 가지고 한국에 들어갔다. 하지만 들어가자마자, 가치 있는 책으로 엮어내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더 많은 근거자료들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해 7월까지 부족한 자료를 더 보충하면서 정리하는 일에 꼬박 반년을 매달렸다. 그 사이 병상에 누우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나는 한동안 세상일에 아주 흥미를 잃어버리기도 했다. 기다리는 사람들은 많은데 한때 이 작업은 나 때문에 중단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한국 문화관광부(당시 명칭)의 지원과 재외동포재단의 후원을 받아 책으로 집대성하는 이 작업을 중도에 멈출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다시 일어나 마지막까지 가서 방점을 찍었다. 이 책은 그렇게 길고도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서 세상에 태어났다. 2007년 7월 이 책이 나오자 KBS를 비롯한 한국의 여러 언론기관에서 지대한 관심을 보여주었다.
한국에서 체류 예정일을 훌쩍 넘기고 2007년 9월 초에야 나는 다시 알마틔로 돌아왔다. 가장 먼저 정상진 선생님을 찾아가 이 책을 드렸다. 정상진 선생님은 이 책을 이틀간에 걸쳐 꼼꼼히 읽으시고 우리 나이로 아흔 살이나 되는 노구로 고려일보에 직접 장문의 평론을 쓰셨다. 나는 지금까지 이보다 더 가치 있는 글을 알지 못한다. 정상진 선생님은 고려일보(2007년 9월 21일)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기셨다. 일부를 발췌한다.
대한민국 서울에서 시인 김병학씨의 채록, 편저, 한 야꼬브씨의 채보, 편곡에 의하여 『재소고려인의 노래를 찾아서』라고 표제한 너무나 방대하고도 아름다운 두 권의 책이 세상을 보게 되였다. 이것은 고려인문화사에서 뿐 아니라 세계 한인문화사에서 너무나 보기 드문 시대적이며 기념비적인 사변으로 되여 있다고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김병학씨는 상기 책의 서두에 책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민족 이민사에 비극의 해로 기억되고 있는 1937년 강제이주 사건은 재소고려인들에게 오랫동안 지켜오던 민족적 유산을 역사의 뒤안길로 묻어두고 낯선 습관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했다. 그분들은 이 사건으로 인해 고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중앙아시아에서 고립된 삶을 살아가게 됨으로써 점차 모국문화를 상실해가는 운명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덧 두 세대가 흐르면서 후손들이 쓰는 모국어조차 한국어(또는 조선어)에서 러시아어로 바뀌어갔다. 그러자 그분들에게 전승되어온 구전가요도 변화를 겪기 시작한다. 곡조의 변화는 물론이려니와 적지 않은 노래가사들의 발음이 왜곡되고 그중에서 의미를 잃어버린 채 소리만 남은 단어들도 생겨났으며 일부 구절은 망실되어 전승에서 아예 사라지기도 했다.”고 쓰면서 다음 계속하여 “노래는 언제나 신비로운 것이고 노래는 언제나 영원한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불리지 않는 노래는 그런 찬사를 받을 자격이 없다. 어떤 한 노래를 신비롭고도 영원하게 만드는 것은 그 노래가 처음 불렸을 때 사람들의 가슴 속에 파고들어 호소한 풍부한 감성과 상징성이 끊임없이 확장되어 나갈 수 있도록 보듬는 노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작업은 재소고려인 구전가요가 그런 자격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드는 보람된 과정에 첫 주춧돌을 놓는 일이라 믿는다.” 이것은 진리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김병학씨의 내가 아직도 모르고 있던 또 다른 면, 너무나 아름답고도 고상한 그의 내부 세계를 발견했다. 그의 지심한 미의 탐구력, 목적달성에의 집요한 지향, 모든 면에서의 정밀성- 이것은 벌서 너무나 귀중한 인간의 성품이다. 이런 인간은 어느 때나 정직하며 실수가 없다. 이런 성품, 미덕, 지향이 바로 이 두 권의 책에서 숨쉬고 있다.
김병학씨가 이 책을 쓰면서 나와 수차 만나기도 했고 담화도 가진 바 있었지만 이와 같은 방대하고도 내용 깊은 책이 되리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다. 진실로 기대 이상의 다대한 노력의 고상하고도 역사적인 결실이다. […] 김병학씨는 수백편의 가사들을 일일이 정리분석하면서 설명이 필요한 노래가사에는 각주를 달아 해설과 설명을 붙였다. 김병학씨와 한 야꼬브씨는 막대한 연구, 탐구력을 경주하면서 펴내는 책에 대한 높은 책임성과 재소고려인들의 노래들에 대한 깊은 사랑을 아낌없이 시위하였다.
책이 나온 지 어느덧 3년 반의 세월이 흘렀다. 부족한 점도 없지 않으나 보람을 느낀다. 모국인으로서 고려인들에게 갖게 되는 빚진 마음도 얼마간 덜어진 것 같다. 앞으로 내게 남겨진 일은 숨은 자료를 찾아 더 보충하고 내용을 더 정밀하게 다듬어 재소고려인 가요사를 완성하는 것이다. 그날이 언제 올지는 모르나 항상 준비해 두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담금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