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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평가를 평가하라

by Adriatico 2011. 12. 18.




과학자의 평가를 평가하라

정치권은 갈수록 기술적 사안에 대해 결정해야 하는 상황을 맞고 있고, 결정에 도움을 받으려고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한다. 하지만 전문가라는 이들도 이해관계에 얽매인 경우가 허다하다. 공개적이고 공정한 전문가다운 평가야말로 전문가들에 대한 이런 의심을 거두는 해결책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전문가의 평가는 어떤 여건에서 이루어져야 할까?

유럽식품안전국이 유전자변형 식물이 인체에 무해하다는 견해를 내놓았고, 국장이 농산물 가공업계 주요 로비단체 중 하나와 연관 있다는 사실이 이미 밝혀진 마당에, 아직도 유럽식품안전국의 전문가 평가가 중요할까? 신종플루 바이러스의 심각성만 봐도 그렇다. 세계보건기구(WTO)와 바이러스 백신 생산업체 간에 유착이 없었다면 신종플루의 위험이 그 정도까지 부풀려졌을까? 산업계의 의사 결정이나 혁신 제품 공인을 위한 로비 활동이 더욱 활발해지는 지금이 과학자의 전문적 평가에 대한 절대적 신뢰에 의문을 제기해야 할 때이다.

과학자의 전문적 평가에 대한 견해 중 널리 수용되는 것이 바로 그 분야를 아는 전문가에게 의견을 구한다는 입장이다. 정치권에서는 특히 전문가의 평가가 마치 절대진리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전문가의 평가는 과학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시각 탓이다. 최근 프랑스에서 생명공학고등위원회가 설립될 때는 더욱 개방적인형식이 채택되었는데, 과학 전문가들의 평가를 보완하기 위해 인문·사회·경제학 분야 대표들과 비정부기구(NGO) 및 단체들의 의견까지 포함하는 전문가 자문 형식이 그것이다. 생명공학고등위원회 설립은 유전자변형 식물에 대한 호의적인 태도 때문에 비난을 샀던 분자생명공학위원회에도 혁신을 가져왔다. 분자생명공학위원회는 과학자 전문평가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기관이다.


GMO·신종플루 등 업계와 유착

혁신이 순탄치만은 않다. 분자생명공학위원회장을 지냈고, 현재 프랑스식물생명공학회장인 마르크 펠루는 생명공학고등위원회 산하 사회윤리경제위원회가 과학적 근거 없이 이념적인 이유만으로 유전자변형 식품을 반대하는 단체들을 수용했다고 비난했다. 그는 두 위원회 간 균형을 찾고, 각 위원회 내부에서도 균형 잡힌 시각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위원장의 시각은 모든 견해를 종합적으로 대표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르크 펠루가 회장을 맡고 있는 프랑스식물생명공학회는 기업형 농업 발전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과학자 단체이다. 그의 이런 비난이야말로 과학만능주의가 어떤 방식으로 여러 전문가 평가 간에 서열을 매기는지를 확연히 드러낸다. , 의사결정권을 가진 정치인은 객관성이나 신뢰성 측면에서 사회윤리경제위원회의 견해보다는 과학자의 견해에 더 무게를 둘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과학자들의 견해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과학은 분야 특화도가 높거나 해당 사안이 복합적인 성격을 지니는 경우가 상당하기 때문에, 과학자들의 지식도 100% 완벽한 것이 아니다. 또한 과학자의 개인적 신념이나 상충되는 경제적·이념적 이해관계가 이들의 분석에 영향을 미친다. 과학자들의 견해를 그대로 받아들이자면, 혁신은 언제나 인류에게 바람직하며, 지구는 언제까지나 과학의 산물을 소화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것이 실질적인 진보를 가져오느냐 마느냐에 대한 견해는 진보를 만들어내는 과학자들의 세계 밖에서도 차용돼야 한다. 하나의 사안에 대한 전문평가가 순전히 과학자들의 의견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견해를 참고하는 방식이 되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들에게만 판단을 맡길 수 없다면

전문평가 및 평가투명성강화최고위원회(HAEA) 설립은 의회의 결정과 과학자들의 견해 사이에 과학적·시민적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할 것이다. 이는 이미 시민을 위한 과학 재단이 2007년 환경그르넬(Grenelle de l’environnement) 개최 당시 제안했고, 현재 새로운 법안의 골자이기도 하다. 위원회의 설립은 전문가 회의를 하나 더 추가하자는 것이 아니라, 전문평가 실시에 필요한 요건을 정의하고 점검할 목적의 전문평가 윤리위원회 구성을 목표로 한다.

민주적·과학적·윤리적인 전문가 평가 관행 수립은 투명성과 다원성, 여러 학문의 동시 적용과 상호 모순성을 필요로 한다. 여기서 상호 모순성이 필요한 이유는 테크노사이언스(과학 지식이 사회적·역사적 산물이며, 비인적 네트워크에 의해 지속된다는 개념) 자체가 중립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혁신에는 늘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기 때문에 전문가 평가가 가장 낙관적인 시각에만 의존해선 안 된다. 따라서 다양한 과학자로 구성된 다원적인 위원회에서 시민사회의 대표들이 참여한 가운데 문제에 정통한 사람들간에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분야에 정통한 사람들이나 과학자라는 명칭이 정밀과학에 한정된 의미로 해석돼서는 안 되며, ‘학문 간의 경계를 넘어 여러 학문이 공존한다는 원칙 아래, 모든 지식 분야로 확대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런 모든 원칙과 방식이 투명하게 적용되고, 대중매체와 시민에게 공개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사회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동시에 이런 원칙의 적용에 독립성을 획득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예를 들어, ‘기업 극비정보라는 미명 아래 실험 결과를 은폐하는 관행도 사라져야 할 것이다.


비과학자와 경합해 결정해야

전문평가 및 평가투명성강화최고위원회는 특히 보건 및 환경 문제와 관련한 위험고발 모니터링을 전담해야 할 것이다. 제안된 법안은 내부고발자의 특별신변보호를 규정하고 있으며, 고발 내용에 대해 체계적이고 면밀한 분석을 실시할 것을 포함하고 있다. 전문가들과 관련해서는 이들의 이념적·직업적 연관성이 전문적 평가 결과에 늘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이들의 평가가 어디에 바탕을 두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또 해당 전문가의 의견과 반대되는, 다른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의견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윤리 업무를 맡을 최고위원회 담당자들에게 독립성을 보장해줄 헌장 채택 또한 필수적이다. 상충되는 의견으로 최종적인 전문평가 확정이 어렵고, 특히 보건이나 환경 측면의 위험이 큰 사안인 경우 최고위원회는 이에 대해 공정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시민 협의(8)를 소집할 수 있다.

그러나 전문평가제도에 민주주의적 성격을 도입하려는 과정에서 드러난 국회의원들의 강한 반발은 우려를 자아낸다. 지난 23일 장레오네티 의원이 발의한 생명윤리법 제정과 관련한 시민 참여안에 대해 의원들이 강하게 반발한 것이 일례이다. 정부가 산업 로비 세력의 압력을 완전히 배제한 상태에서 의견을 수렴할 수 있어야, 반박의 여지를 일절 주지 않는 전문가 평가도 진실로 공익에 이롭게 활용될 것이다. 시민들의 공익을 위한 전문가 평가가 시작 단계에서 완수 단계까지 이익단체의 압력을 견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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